요한계시록 1장 17절

요한계시록 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요한이 본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너무나 놀라워서 죽은 것 같이 넘어졌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본체를 보려면 육적인 몸이 죽어야 함을 말해준다. 단순히 지식이나 신비한 경험으로는 알 수 없는 분이며, 자아가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분이다. 요한은 찬란하고 위엄 있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두려워하였고 그 앞에서 죽은 자 같이 엎드려졌다. 이러한 현상은 다니엘도 경험하였고, 사도 바울도 경험하였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변화산에서 직접 주님의 영광의 모습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며 엎드렸다.예수님은 엎드러져 죽은 자처럼 되어버린 요한에게 손을 얹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다시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표현을 했다. 알파와 오메가 라는 표현과 같은 말이다. 처음은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사람 아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죄의 몸을 주기 위해 세상에 와서 마지막 사람으로 십자가에서 그 죽음의 대속을 하셨고, 부활하셔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하나님 나라로 만드시는 것이다. 원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대적한 범죄한 천사들로 인해서 세상에 물질세계로 들어와 범죄한 영들에게 죽어야 할 몸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을 이루어신 분이다. 알파와 오메가는 히브리어로 알렙프(하나님)와 타우(십자가)이다. 알레프와 타우가 결합된 단어가 에트로서 목적격 조사인 것이다. 목적은 죽음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죽음의 단어는 히브리어로 무트이다. 말씀으로 완성한다는 의미다. 죽어야 하는 몸(예수)로 와서 죽지 않는 몸(그리스도)로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이와 같은 것이다.

성도가 예수로만 알고 있고 그리스도로 넘어가지 못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두려운 분이 된다. 예수로만 알고 그리스도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죽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사랑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환상이던 꿈이던 만나는 예수님은 육신으로 보는 분이므로 그 분이 두렵게 여겨진다. 그러나 육신이 아니라 영으로 바라보는 자는 그 분이 두렵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도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죄를 대속하러 오시고(첫사람 아담), 영원한 생명을 주러 오신(마지막 아담) 분이라는 말이다.

로마서 83절에서『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요한복음 1230-33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 이니라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사탄이 쫒겨난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 임금이 쫒겨나면 성령께서 오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168절에서『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성도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연합되어 죽으면, 심령 속의 사탄이 쫒겨나고, 그러고 나면 성령이 임하셔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책망하신다.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된다. 그리스도 를 믿는 것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구원이라는데도 믿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이다. 의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여 성부 하나님께로 모든 세상죄를 짊어지고 가셨으므로, 죄에 대해서 자유인이 된 것이다. 심판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성령이 오는 것이다. 그 증인이 그리스도이고 성령인 것이다.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사람 아담의 관계를 모르면 죄가 무엇인지, 왜 구원이 필요한지, 그리고 심판을 당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이야기와 연계되어 이해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쪽짜리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에덴동산의 이야기가 신화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첫사람 아담의 실체)만 부여잡고 있다면 알레프에 머무는 신앙이 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반쪽짜리 믿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두려운 하나님으로 머물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은 부활하셔서 하늘에 승천하시고 성도의 심령 속에 성령의 능력으로 임재하셔서 성전으로 오시면 테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으로 되는 것이다. 구원의 완성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인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첫사람 아담으로 태어나고, 마지막 아담으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성도가 부부와 같이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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